불안이 갑작스레 엄습하는 밤이 있습니다.
맥락도 없고 앞뒤도 알 수 없는, 일상이라는 파편들로 이어진 날들을 그저 살아가는 것이 생의 이유일 리 없다며, 자만과 오만으로 꿈 꾸었던 어느 날의 다짐, ‘결단코 나는 삶의 실재를 보고야 말겠다’는 그 다짐이, 실마리 하나 찾아내지 못한 채 끝나버릴 지도 모르겠다는 불안. 종일, 신체와 감정을 극도로 소모하고 온 날이면 더욱 더 불안에 잠 못 이룹니다.
그것은, 누군가의 말처럼, 나의 일상들에서 문화라 불리는 관습이나 제도들을 떼어내고, 심지어 그 속에서 형성된 인격이나 인식들 마저 떼어 냈을 때 마지막 남은 무엇, ‘삶’이라고 부를 수 밖에 없는 그 무엇일 거라, 막연히 그려 봅니다.
어쩌면, 어떤 규약적인, 또는 무감각한 정서로는 만들어지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생에서부터 건져 올린 사려 깊은 예술들이라면 그 형체를 드러내 줄 수 있을까.
어쩌면, 매일 같이 의미없이 치뤄 내야하는 일상의 파편들을 꼼꼼히 기록해 봄으로써 그 실재를 희미하게나마 그려내 볼 수 있지는 않을까.
그리고 마침내, 그 실재의 끄트머리라도 움켜 쥐었을 때, 비로소 기쁨으로 미련 없이 생을 던질 수 있지 않을까.
이대로 덧 없이 생을 끝내기 싫은, 범부의 고뇌가 깊어 갑니다.
오 인간이여! 들으라!
나는 잠들었었고
이제 그 깊은 잠에서 깨었노라.
지금 세상은 깊도다,
밝은 대낮이 기억하는 것보다 더 깊도다.
밤의 고뇌는 깊지만
기쁨은 고뇌보다도 더 깊도다!
고뇌는 말하길: 사라져라!
그러나 모든 기쁨은 영원으로 향하려 하나니,
깊고도 깊은 영원으로 향하려 하나니.
말러 교향곡 3번, 4악장,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중에서.
말러 3번 교향곡, 6악장
베르니르트 하이팅크, 베를린 필하모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