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창을 가볍게 스치는 소리에 그는 창문 쪽으로 몸을 돌렸다. 다시 눈이 내리 시작했다. 그는 은빛이 나는 까만 눈송이가 가로등 불빛을 배경으로 비스듬히 내리고 있는 것을 졸린듯 지켜보았다. 서부로 여행을 떠날 때가 왔다. 그렇다, 신문이 옳았다. 눈은 아일랜드 전역에 내리고 있었다. 눈은 검은 중부 평야의 구석구석에, 나무 없는 언덕 위에 내리고, 앨런의 늪 위에도 소리없이 내리고, 더욱 먼 서쪽 샤논 강의 거칠고 검은 물결 위에도 조용히 내리고 있었다. 눈은 또한 마이클 퓨리가 묻혀 있는 언덕 위 쓸쓸한 묘지의 구석구석에도 내리고 있었다. 비뚤어진 십자가와 묘지 위에도, 조그마한 대문의 창살 위에도, 메마른 가시나무 위에도 눈은 바람에 나부끼며 수북히 쌓이고 있었다. 우주 전체에 사뿐히 내리는 눈 소리. 그들의 최후의 내림처럼 모든 산 자와 죽은 자 위에 사뿐히 내리는 눈 소리를 듣자, 그의 영혼은 서서히 이울어져 갔다.
<제임스 조이스, ‘더블린 사람들 - 죽은 사람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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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녁, 약속한 일이 있어 사무실에 나왔으나 올 수 없다는 연락을 받고, 왠지 모를 안도감을 느끼고는 나갈 채비를 하며 흘깃 창문을 보니 눈이 내리고 있었습니다.
오늘처럼 소리 내지 않고 수북히 내리는 눈을 보면 늘 예전에 읽었던 ’더블린 사람들‘의 마지막 장면이 떠오릅니다. 아마, 세상 뒤의 세상을 탐하던, 막 20살이 되었을 무렵이었을 겁니다. 부모의 품을 벗어나며 자신을 억압하던 것의 정체를 알기 시작했고, 그래서 벗어나려 발버둥 쳤고, 서로의 마음을 아프게 했고, 그래서 가책 속에 시간을 그저 헛되이 흘려 보내고 있던 때였을 겁니다. 그 때 읽었던 그 소설의 마지막 장면은, 이젠 흐릿한 기억 속에서도 분명히 각인된 한 단어를 상기시킵니다.
용서.
소설 속의 모든 인물들에게 하얀 눈이 쌓이듯, 그래서 그들 모두를 용서할 수 있었듯, 나를 상처 입힌 사람에게도, 그들을 아프게 한 나에게도 용서의 눈이 내리길, 어린 마음에도 간절했던 기억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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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이들은 아마, 눈을 보자마자 옷을 서둘러 입고 눈사람을 만들러 나갔을 테지요. 피곤한 아내는 아이들에게 이끌려 어쩔 수 없이 나갔을 테지만, 아이들만큼이나 순박한 그녀는 금새 애들보다 더 진지하게 눈사람을 만들고 있을 겁니다.
그들에게도 눈이 내리고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용서가 필요없기를 바랍니다. 나도, 그들도, 서로 용서할 기억이 쌓이지 않길 바랍니다. 그저 이 눈처럼, 서로에게 한 없이 가벼운 시간들만 쌓이길 바랍니다.
이제, 그들을 보러 가야겠습니다.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29번, 3악장, 그리고리 소콜로프
글을 참 잘 쓰시는 분 같습니다. 음악과 삶, 감성을 멋지게 표현하셔서 감탄하곤 합니다.
바쁘고 분주한 일상이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는 시대에 시간과 마음과 귀를 열어야 들리는 음악이 특별하기는 합니다.
저는 눈과 관련된 책은 일본저자 가와바다 야스나리의 설국 이 생각납니다. 대학 입학하던 겨울에 읽었던 책인데
오래되어서 아무런 줄거리가 생각이 나지는 않지만 눈으로 뒤덮인 장면이 마음속에 남아있네요. 다시 한 번 읽어볼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