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도 첫째놈은 한 해의 마지막과 새 해의 첫순간을 특별하게 보내야 한다며 광화문으로 가자고 보챘던 것 같은데, 올해도 어김없이 밤11시가 넘어가니 나가자고 옷을 챙겨 입고 부산을 떱니다. 거기다, 작년만 해도 1년이 뭔지도 모르던 둘째놈까지 가세해 어미, 아비 등을 떠 밉니다.
광화문은 죽을 수도 있다고 겁을 잔뜩 주고는- 작년에도 그랬던 거 같은데..- 동네 뒷산의 팔각정을 가자고 겨우 달래 집을 나섭니다. 가는 길은 분명, 작년에도 그랬듯, 이 시간을 그냥 넘기지 못할 연인들로 인산인해일테니 그걸 핑계로 다시 집으로 후다닥 돌아올 생각을 하고-늙으면 집이 최고 아닙니까..-차를 출발합니다.
이런.. 생각보다 일찍 출발한 모양인지 팔각정 입구 앞에서 조금 대기하니 자리가 납니다. 차가운 자정의 밤공기에 몸서리쳐 지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아이들과 팔각정에 올라 전망을 보고 싶었으니, 옷을 단단히 여미고 밖으로 나섭니다.
아, 매번 근처에만 왔다가 보지 못했던 서울의 밤 풍경이 눈 앞에 펼쳐집니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기쁘고 충만한 것은, 입김을 뿜으면서도 눈을 반짝이며 활짝 웃는 아이들의 모습. 왔다가 못보고, 왔다가 그냥 돌아가고, 기대했다 실망하는 아이의 모습만 매번 보고 또 봤는데, 오늘은 아이들의 웃음.
어느 날부터인가 나에게, 어제는 오늘이고, 오늘은 내일이었는데, 그래서 기억 속의 어느 장면이 도대체 어느 해의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생의 반복이었는데, 다가 오는 하루하루가 모두 다르고 새로운, 그래서 오늘이 어제의 반복일 리 없는 우리의 아이들이 나의 생에 균열을 일으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반짝거리는 눈을 크게 뜨고 새해 복 많이 받으라 인사하는 아이의 진심에, 문 앞에 서서 나도 모르게 아이들과 아내를 꾸욱 안아봅니다.
다시, 아이들을 깨우고, 밥을 먹이고, 옷을 입히고, 함께 집을 나서는 일상을 반복할 테지만, 우리의 내일은 어제와 다를 겁니다. 우리의 아이들이 만들어 줄 차이에 감사하며, 아이들을 세상에 내 놓을 때 했던 스스로의 다짐을 다시 떠 올려 봅니다.
‘네가 돌아올 곳이 될게.’
라벨 볼레로, 세르지우 첼리비다케, 뮌헨필하모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