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의 기쁨을 알아버린 아이들이, 자는 시간마저 아까운지 밤 늦도록 나와 아내 사이에서 부비적 대다 겨우 잠든 새벽.
머리만 새었지 아직 철 없는 아비와, 기미는 늘었으나 마음은 늙지 못한 어미는, 일 때문인지, 사내놈들 때문인지 알 수 없는 피곤함에 지쳐 말 없이 거실에 앉았습니다.
서로 말 한 마디 없이 앉아 있으려니, 문득 아내와 정다운 이야기를 나눈 것이 언제이던가 돌이켜 봅니다. 사연 없는 관계가 있겠냐 만은, 그래도 제법 굴곡 많던 우리 지난 시절이었는데, 아이들이 나왔고, 아이들을 키우고, 그러다 이렇게 무정해져 버렸나 싶어 황망합니다. 그럴 수 밖에 없다고, 다들 그렇게 살아간다 하지만, 중요한 것이 꺼져 가는 느낌에 무척 슬픕니다.
서로의 차이에 지쳐 한동안 떠나 있다 뒤늦게 알게된 당신 마음이 안쓰러워 달려갔던 그 밤이 생각나. 막상 당신 얼굴을 보자 무슨 말부터 해야할 지 몰라 떠들었던 영화가 무엇이었는지 기억나. 그리고 마치 한 번도 헤어지지 않았던 것처럼 손을 잡고 새벽 내내 걸었던 그 길이 생각나. 그 때, 우리를 태웠던 불꽃이 떠올라.
그런데, 그 불꽃이 꺼져 갑니다.
일부러 몸을 돌려 아내의 얼굴을 마주합니다. 놀란 아내는 표정으로 이유를 묻지만 입을 떼진 못합니다. 풀이 죽은 머리카락과 푸석해진 얼굴이 안쓰러워 슬쩍 쓰다듬어 봅니다. 왠일인지 가만히 있는 아내에게 안쓰러움을 느끼는 찰라, 우리의 관계가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음을 알아챕니다.
다시, 또 다른 불꽃이 피어나는 걸까요.
사연과 굴곡이 쌓인 어느 날, 또 다시 지쳐 서로를 마주하면, 오늘 밤이 떠오를 텝니다.
레스피기 ‘노투르노’, 사스키아 조르지니
https://youtu.be/Fwz7_iRgvis?si=-QxmRc1dYWZi-nr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