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형식을 갖지 않는다는 에세이는 규정하기가 쉽지 않다. 기승전결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에세이는 이렇게 써야 한다, 하고 말하는 이도 없다. 에세이는 다양한 방법으로 쓸 수 있지만 재미있어야 한다. 에세이를 읽기 위해 책을 폈다는 것은 재미를 얻기 위함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문학과 거리가 먼 것도 아니다. 좋은 에세이는 훌륭한 문학 작품이 될 수도 있다. 정보를 주기도 한다. 이 책에는 실로 다양한 에세이 작품들과 에세이 작가들의 말이 소개되고 있다. 에세이라는 말에는 노력하고, 시도하고 시험하는 글이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저자는 집필을 위해 목록을 먼저 작성한다고 하였다. 목록이 없이 글을 쓰게 되면 불안할 수 있다. 목록은 글의 실마리가 된다. 생각나는 대로 글 쓸 거리를 적어두는 것이 좋겠다. 저자는 이 책의 차례에 그 목록을 적었다. 에세이와 에세이스트, 에세이즘, 목록, 불안, 위안, 스타일, 문장, 우울, 단상, 혼잣말, 탈선에 관한 것 등이 그것이다. 이상하게도 목차에 위안에 관하여라는 장이 다섯 번이나 등장한다. 저자가 위안을 받고 싶은 마음이 크다는 걸 말하는 것일까? 목차가 중복되는 건 처음 본 거라 신기했다. 이 또한 새로운 시도가 가능한 에세이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에세이는 한 사람의 인생 동안 배운 것, 경험한 것, 느낀 것들의 집약체라고 볼 수 있다. 퇴적물에 비유한 것이 적절해 보인다. 저자는 이 책을 힘든 시기에 집필했다. 아내와의 이별로 인해 고통스러워할 동안 이 책을 썼다. 한동안 세상을 등지고 싶다는 마음을 가질 정도로 힘들었던 그에게 책과 글쓰기는 어쩌면 큰 위안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쓴 글이 바다를 건너 우리나라에까지 번역되어 나왔으니 자신을 구원하고자 했던 것이 다른 이를 살리는 글이 되었다.
책에 소개된 책들 중 읽어보고 싶지만 우리나라에서 번역되지 않은 것들도 있고, 처음 들어보는 작가의 책도 있었다. 수전 손택에 대해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롤랑바르트에 열광하기도 한다. 우리는 어떤 시기에 어떤 종류, 혹은 한 작가의 책을 섭렵하기도 한다. 저자도 읽었던 책을 반복해서 읽은 경험이 있다. 나에게도 그런 시기가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런 책을 읽었을까 싶은 것도 있지만 그 시기의 나에게 자양분이 되었던 책들이다.
요즘은 에세이라는 형식 없는 형식의 책이 많이 나오는 것 같다. 내가 쓴 책도 에세이였고, 누구든 자신의 이야기를 엮어 세상에 내놓으면 에세이라고 한다. 접하기 쉽고 쓰기도 쉬울 것만 같은 에세이이지만 그럴수록 더 잘 쓰기는 어려운 것 같다. 재미와 정보를 주고, 감동과 도전을 준다면 좋은 에세이가 아닐까? 유려한 문장과 논리와 지식으로 지적, 문학적 목마름을 채워줄 수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 목소리 리뷰
https://www.youtube.com/watch?v=pvU4-92pFzw&t=36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