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가지 일로 무척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바쁠 때 줄어드는 시간 중 가장 큰 것이 독서 시간이라는 것이 슬프다. 그렇게 바쁜 가운데 짬 내어 읽던 책 두 권을 내려놓았다. 다른 이가 재미있게 읽었다고 나에게도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님을 절실히 깨달았다. 읽던 책을 내려놓는 것도 용기가 필요하다. 나의 마음을 사로잡고 열정을 불태울 수 있는 책이 나에겐 중요하다. 이 책을 읽으며 그런 것을 느꼈다.
어느 블로그에서 이 책 소개를 읽은 것 같다. 처음에는 무명작가인가 하고 빌려와 한참 후에야 읽기 시작했는데 알고 보니 재미있게 읽었던 불편한 편의점 저자가 소설 쓴 경험을 적은 가슴 설레는 책이었다. 그 책으로 아주 유명해지기 전부터 그 책이 베스트셀러가 될 때까지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읽다가 줄 긋고 싶은 부분이 많아 온라인서점에서 장바구니에 넣어 놓고 계속 살까 말까 망설이고 있다.
얼마 전 출간한 첫 책을 도서관이나 서점에서 만나면 자식을 만난 듯 반갑고 예뻐 보인다. 아직 첫 책의 기쁨과 설렘이 가시지 않았지만 벌써 다음 책은 어떤 내용으로 쓸지 구상을 시작했다. 아직 구체적으로 생각한 건 없지만 고령화 사회가 되면서 많아진 알츠하이머 환자나 그 가족, 혹은 늘어가는 1인가구에 대한 이야기를 써 보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만 갖고 있다. 이런 작법서나 책 쓰기에 관한 책을 읽으면 부스터를 단 것처럼 많은 생각이 한 번에 팍팍 떠오르고 글 쓰고 싶은 욕망이 샘솟는다. 나에게는 이런 책이 좋은 책인 것이다. 다음에는 소설을 쓰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왠지 소설은 쓰기가 더 어려울 것 같다는 두려움도 있다. 소설가가 에세이를 쓰는 경우는 많지만 에세이스트가 성공적인 소설을 쓰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다. 꿈꾸던 것들을 하나씩 이루어온 걸 생각하면 나의 이런 작은 소망이 이루어질 날이 있을 것이라 믿는다.
김호연 소설가는 작업실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한다. 아무래도 집에서 소설을 집중해서 쓰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집 식탁에서 소설을 쓰는 이도 있을 것이고 집을 작업실로 꾸민 작가들도 많겠지만 저자는 계속 작업실을 찾아 나섰다. 멀쩡히 다니던 출판사를 그만두고 전업작가를 꿈꾸며 얻은 첫 작업실은 그의 로망에 걸맞은 멋진 곳이었지만 오히려 소설 쓰기에 초초함만 더해갔던 아픈 경험을 안고 나왔다. 이후에 21세기 문학관이나 토지문학관 등 집필실을 제공받는 곳에 지원하여 잠깐 동안 입주하기도 한다. 그곳에서 그는 여러 소설들을 썼으므로 입주는 성공적이었다. 경쟁이 치열하다는 그곳에 절박한 심정으로 지원서를 써냈을 그를 상상해 본다. 절박함이 결국 성공을 부른다는 진리.
그렇게 작업실을 전전하던 그는 결국 자신의 머릿속이 작업실임을 고백한다. 걸으며, 설거지하며 생각하 것들이 결국 글이 된다. 작업은 작업실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모든 순간이 작업이므로 머릿속이 작업실이라는 말이 딱 맞다. 하지만 책을 읽으며 나도 번듯한 작업실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나는 전 책을 스터디카페에서 많이 썼다. 사실 그곳도 좋은 공공작업실이다. 입주하는 다른 곳에 비하면 저렴하기까지 하다. 글 쓸 때 음악을 듣는다는 저자와 달리 나는 오히려 무음이나 백색소음 속에서 더 집중해서 글을 쓸 수 있다. 소리에 민감한 면이 있는지 음악이 나오면 어느새 음악에 귀를 기울이는 나를 발견하기 때문이다. 특히 가사가 있는 노래는 최악이다. 그래서 사람 많은 카페나 스터디카페가 좋다.
지금 이 글은 안방에 있는 소박한 리클라이너에 앉아 쓰고 있다. 작은 테이블에 핸드폰과 접이식 아주 작은 블루투스 키보드를 이용하고 있다. 이것만 있으면 어디에서나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이 정말 행복하다. 어느 곳이든 작업실이 될 수 있으니까. 사실 지금 내년에 에듀오케스트라에서 연주할까 하는 브람스 교향곡 1번을 듣고 있다. 멋진 곡이다. (가끔은 음악을 들으면서도 글을 쓸 수 있다.) 이 자리에 앉아 책을 읽으며 바이올린 연습을 하기도 한다. 손가락이 꼬이는 이미 외운 부분을 계속 연습하며 책을 읽으면 손가락 연습도 되고, 이상하게 책 내용이 이해가 잘 된다. 연습을 멈추고 넘기기 전까지 같은 페이지를 들여다보기 때문이다. 나 같은 사람이 또 있을까 궁금하다.
저자는 산책을 즐긴다. 나는 글 쓰다 막히면 바이올린 연습을 한다. 그러면 어느새 글에서 멀리 떨어져 나와 무아지경에 빠졌다 나온다. 그러면 글이 새롭게 보인다. 몰입의 좋은 점이다. 시간이 많아 하루종일 책 읽고 바이올린 연습하고 글 쓰면 참 행복하겠다. 언젠가는 그런 날도 오겠지. 저자의 경험담 중 마감한 뒤 책처럼 인쇄해서 읽어보는 건 정말 좋은 일인 것 같다. 첫 책을 낼 때는 인쇄하지 않고 편집자님이 보내주신 PDF 파일을 탭으로 수정하느라 편리하긴 했지만 오탈자를 놓친 부분이 몇 군데 있었다. 다음에는 꼭 인쇄해서 읽어볼 것이다. 그러고 보니 죄송한 말이지만 이 책에도 탈자나 문맥이 이상한 부분이 있었다. 대작가도 실수를 할 수 있다는 게 위안이 되기도 했다.
저자의 조언 중 캐릭터에 집중한다는 것도 큰 도움이 되었다. 등장인물이 매력적인 것이 영화나 책을 끝까지 보게 하는 동기가 되기도 하니까. 물론 플롯도 중요하겠지만 입체적이고 멋진 인물끼리 주고받는 대화나 사건이 이야기를 끌어갈 수도 있는 것이다. 저자는 주변 인물들 중에서 캐릭터를 찾았다고 한다. 내 주변에는 어떤 이가 있을까? 한번 생각해 보자. 불편한 편의점을 쓰는 동안 편의점을 들락거리며 관찰을 많이 했다고 한다. 그가 겪은 모든 일들이 이야기 속에 녹아들어 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많은 경험을 해보는 것이 정말 중요한 것 같다.
우리는 누구나 우리만의 이야기들을 듬뿍 갖고 있다. 종종 사람들은 자신이 겪은 일을 글로 쓰면 소설 열두 권도 넘는다는 말을 한다. 일반인과 소설가의 차이라면 그걸 실천했느냐, 하지 않았느냐의 문제일 것이다. 쓰려고 마음먹는 순간 우리는 어쩌면 이미 소설가가 아닐까? 김호연 작가님의 말씀처럼 작업실은 우리 머릿 속에 있으니까. 나의 다음 꿈은 언제 이룰 수 있을지 기대가 된다.
* 목소리 리뷰
* 본문
- 결국 작법은 스스로 만든 기술이고 그 기술을 만드는 능력은 일상의 반복된 작업 패턴에서 나온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른바 ‘루틴’. 그 루틴을 발휘할 수 있는 고정 공간 ‘작업실’. 그 작업실에서 쓸 글감을 떠올리는 ‘산책’. 그리고 집필 활동의 근육이 되는 ‘독서’ 이 네 가지 요소가 소설 쓰기의 친구가 되어주었고 계속 나를 쓸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소설 쓰기도 결국 글쓰기였고, 나는 글쓰기 작업에 대한 탐구를 포기할 수 없었다. 작가. 작가는 자신만의 글쓰기 방식을 체화한 자를 가리키는 말이어다. (20쪽)
- 작업실과 루틴 못지않게 중요한 것으로 산책이 있다. 나에게 산책로는 '글쓰기의 용광로' 같은 곳이다. 발로 글을 쓰기 때문이다. 여기서 발로 쓴다는 건, 엉망진창 쓴다는 뜻도 아니고 취재를 많이 한다는 것도 아니다. 나는 산책을 하며 이야기를 구상한다. 사책은 뭐랄까. 아이디어와 아이디어가 반응하고 캐릭터와 캐릭터가 들끓는 나만의 창작 루트다. 작업실에서 글을 쓰다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으면 산책을 하며 떠올린다. 그리고 작업실로 돌아와 그것을 타이핑한다. 이것이 작업 동선이다. (28쪽)
- 서점에서 사람들이 당신의 소설을 집어 들게 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무조건 아이템과 제목이라는 원투 펀치를 잘 날려야 한다. 소설 기획이 핵심인 이 두 가지 도구로 독자들을 사로잡지 않고서는, 당신의 소설을 사람들에게 읽히기 쉽지 않을 것이다. … 그래서 아이템이 신선해야 한다. 제목이 책을 펼치게 만들어야 한다. … 소설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쓰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파는 사람이기도 하다. 세일즈의 영역에서 보자면 제목과 아이템은 상품명과 카피다. 수많은 회사의 마케팅 부서에서 이것을 위해 전력을 기울인다. 작가도 회사다. 다만 1인 회사이기에 당신의 소설을 팔 궁리도 직접 해야 하고, 팔릴 만한 제목과 카피도 직접 작성해야 한다. … 소설 구상의 절반은 아이템과 제목에 있다. 모름지기 시작이 반이고, 아이템과 제목을 완성하는 게 소설 쓰기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 두 가지에 대해 궁리하는 동안 당신은 당신이 쓰려는 이야기가 무엇인지에 대해 서서히 알갈 수 있다. (63-64쪽)
- 당신의 이야기가 하나의 장르든 이종 장르든 어느 장르에라도 속했으면 한다. 그렇다면 독자들이 익숙한 눈길로 당신의 이야기 속 새로움을 찾으려 애쓸 것이다. 하지만 어느 장르에도 속하지 않는 이야기를 쓰고 싶다면, 장르를 창조하라. 잘 팔리면 다신이 곧 장르가 될 것이다. (67쪽)
- 당신에게 소설은 무엇인가? 이 질문은 소설을 쓰는 내내 간직해야 할 물음이고 소설을 완성할 수 있는 동력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에게 당신의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 쓰는 것이 소설인가? 아니면 털어놓지 않으면 미칠 것만 같은 이야기를 정리한 것이 소설인가? 혹은 많은 삼이 구매해 당신을 부자로 만들어 줄 도구가 소설인가? 아니면 취미 혹은 명예로 소설가라는 직함을 추구하고 싶어서인가? 무엇이든 좋다. 당신의 소설 쓰기가 행복하길 바란다. 행복하기 위해 힘들게 쓰기 바란다. 당신과 당신의 소설에 대해 알고 쓴다면 힘이 든 만큼 행복할 것이다. 무엇을 쓸지 알고 있는 당신은, 행복한 소설가가 될 준비가 된 것이다. (70-71쪽)
- 몰입감 있는 장편 서사를 쓰려거든 부디 플롯이라는 빨랫줄을 치고 이야기의 팽팽함(긴장감)을 위해 구조라는 지지대를 세워라. 능동적인 길 안내를 하는 플롯이라는 지도를 챙기고, 모험에서 지치거나 늘어질 때마다 기운을 차릴 포인트와 같은 구조점을 확보하라. 장편 소설 집필은 멀고 험난한 여정이다. 무작정 떠나 용기보다는 완주할 수 있는 대비가 더 중요하다. 플롯과 구조는 바로 그 대비책이다. (79 쪽)
- 캐릭터가 좋고 캐릭터 플레이만으로도 이야기가 충분히 전해진다면, 굳이 플롯을 두드러지게 하기보다 캐리터의 재미를 극대화하는 게 나은 방향이 될 수 있다. <망원동 브라더스>는 일정 부분 나 자신의 경험과 주변의 인상적인 캐릭터들을 조합해 만든 세대별 루저남들이 존재했기에, 그들을 한 곳에 모아 일어나는 화학작용을 글로 풀어내는 게 바람직한 이야기의 방향이었다. (84쪽)
- 플롯과 캐릭터 중 무엇이 중요한지에 대해 종종 작가들끼리 토론이 벌어지곤 한다. 나는 언제나 캐릭터에 손을 들어주나. 첫째도 캐릭터 둘째도 캐릭터 셋째도 캐릭터다. 왜냐고? 당신 옆에 엄청나게 매력적인 사람이 있다고 생각해 보라. 그런 사람과 함께라면 그날의 계획 따윈 상관없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잊을 수 없는 캐릭터를 창조하는 것이야말로 작가의 숙명이다. 나의 경우엔 언제나 디오니소스 캐릭터에 빠져든다. 머리보다 가슴이 뜨거운, 커피보다 술이 어울리는, 고민보다 행동이 앞서는, 평범함보다 순탄치 않은 상황이 어울리는 그런 캐릭터를 동경한다. … 캐릭터는 어떻게 창조하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간단히 정리하자면 먼저 당신이 좋아하는 캐릭터를 만들어라. 다음에 당신이 싫어하는 캐릭터를 만들어라. 그리고 둘이 싸우게 해라. 그 싸움의 전 과정을 관찰해 당신이 싫어하는 캐릭터의 좋아하는 면을 발견해 발전시키고, 당신이 좋아하는 캐릭터의 싫어하는 면도 발견해 발전시켜라. 결국 당신은 입체적인 캐릭터 둘을 얻게 될 것이다. 이것이 초고의 과정이다. 재고에서는 이 캐릭터들의 좋고 싫음의 부분을 이퀄라이징 하듯 조절해 가며 이야기를 진전시키면 된다. 캐릭터들의 성격이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순간, 당신은 그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게 될 것이다. (84-85쪽)
- 나는 원고를 마감하면 반드시 출력해 읽어본다. 먼저 출력본을 읽고, 시간을 두고 고민한 뒤, 퇴고를 거쳐 송고한다. … 첫째, 미완성 원고 출력본은 완성형 원고로 가는 징검다리다. 둘째, 출력본으로 읽으면 원고가 다라 보인다. 셋째, 출력본을 읽는다는 것은 스스로 모니터 요원이 되는 길이다. 넷째, 출력본 읽기는 글쓰기 여정의 쉼터와 같다. 고생해 작업한 원고를 가지고 카페에 갈 때가 내겐 가장 즐거운 시간이다. 커피를 시켜 놓고 출력본을 읽으며 글을 쓴 시간을 돌아본다. 찬찬히 원고를 살핀다. 오타는 없는지, 비문은 없는지, 구두점은 제대로 찍혔는지, 문장 구조는 잘 짜였는지, 문맥은 타당한지…… 무엇보다 이야기가 궁금한지 독자의 심정으로 카페인을 흡입하며 읽는다. 그러면 서서히 답이 나온다. 어떻게 고쳐야 할지도 슬며시 보인다. 남은 시간은 커피를 마저 마시고 거리를 거으며 수정 사항을 머릿속에서 정리하면 된다. (47-50쪽)
- 글쓰기에는 온오프 모드가 없다. 삶에 닿아 있고 생활과 엮여 있다. 작업실에 처박혀 있는 동안에 떠오르는 아이디어는 얼마 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아이디는 잠에서 덜 깨 뒤척이다가, 설거지를 하며 멍 때리다가, 청소기를 돌리며 콧노래를 부르다가 떠오른다. 이를 적극적인 구상을 통해 발전시키고, 그렇게 머릿속에 정리된 글감을 가지고 작업실에 가 풀어내는 것이다. 하마디로 당신의 머릿속이 작업실이다. (6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