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immy Fontana, Il Mondo
워킹타이틀에서 제작한 영화 중 가장 좋아하는 영화를 한 편 꼽으라면, 잠깐 고민은 하겠지만 결국엔 이 영화를
고르게 될 것 같습니다. <어바웃 타임>(2013). 시간 이동이란 누구나 한 번은 꿈꿔본 매력적인 소재, 제아무리
시간을 되돌려도 결코 똑같은 하루가 반복되지 않는다는 것. 현재와 행복은 합집합이 아니라 교집합이라는 것.
영화의 모든 시퀀스가 사랑스럽지만, 그중에서도 역시 팀과 메리의 결혼식 장면이 인상적입니다. 신부 입장을
기다리는 설렘의 순간, 누군가 Play 버튼을 누르고 음악이 시작되면서 장미처럼 붉은 웨딩드레스를 차려입은
메리가 등장하죠. 이 장면에서 흐르는 노래가 Jimmy Fontana의 Il Mondo, '세상' 입니다.
내 주변에선 언제나 그렇듯 세상은 똑같이 돌아가고 있어요/돌아요, 세상은 끝없는 우주에서 돌고 돌아요
방금 시작한 사랑도 있고 이미 끝난 사랑도 있지요/내가 그렇듯 사람들은 기뻐하기도 괴로워하기도 해요
이 세상, 바로 이 순간 당신을 바라봐요/난 당신의 침묵에 빠져들어요/당신 옆에서 난 아무것도 아니에요.
레이첼 맥아담스(메리 역)의 깨물어 주고 싶은 애교는 말할 것도 없고, 도널 글리슨(팀 역)의 귀염뽀짝 춤도
웃음이 새어 나오게 만들죠. 그리고 앞으로의 미래는 항상 밝을 순 없으며, 비에 젖는 날도 있고, 세찬 바람을
겪을 수도 있음을 일러줍니다. 낮이 가면 밤이 따라오고, 어느 순간 또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는 것처럼.
흥미로운 건 지미 폰타나가 부른 이 불세출의 명곡을 편곡한 사람이 바로 엔니오 모리꼬네란 사실입니다.
지금이야 위대한 영화음악가로 기억하는 마에스트로지만, 5, 60년대 모리꼬네는 이탈리아 대중음악계의
실력 있는 편곡가로 정평이 나있었습니다. 아마 다 셀 순 없어도 500여 곡이 그의 손을 거쳐 갔을 겁니다.
지미 폰타나, 미나, 질리올라 칭케티 등 60, 70년대를 주름잡던 기라성 같은 칸초네 가수들은 빠짐없이
모리꼬네의 편곡이란 은총에 힘입어 자신들의 전성기를 구가할 수 있었죠. 그러나 반대로 모리꼬네는
정통 클래식 전공자였음에도 생계를 위해 대중음악을 한다는 사실을 마음의 짐으로 여겼던 모양입니다.
초창기 편곡가로 활동할 당시에는 여러 개의 가명을 돌려 사용해야 했고, 그럼에도 동료의 비난과 스승의
질책은 피할 수 없었습니다. 특히 그를 유난히 아끼고 사랑했던 스승 고프레도 페트라시의 실망이 컸죠.
훗날 모리꼬네가 작곡가로 성공했을 때조차 그는 "영화음악은 진정한 음악이 아니다"란 말로 냉담했습니다.
다시 돌아가서, 세상은 우주 속으로 끝없이 돌고 돌기를 반복하고 사람은 기쁨과 슬픔 사이를 쉴 새 없이
오갑니다. 모리꼬네 같은 거장이라도 우주의 섭리는 피할 수 없었던 게지요. 그러니, 당장의 어려움이나
걱정 같은 것에 너무 얽매일 필욘 없습니다. 약의 도움을 받는 방법까지 포함해 해결책은 항상 있습니다.
설령 400년 뒤 외계인의 침공이 기다리고 있다고 해도, 일단 눈앞의 마감이 더 중요하지 내가 죽은 다음
침공을 하든 침을 놓든 그게 무슨 상관이겠어요? 오늘은 꼭 끝내겠다고 마음먹고 일찍 일어났지만,
또 이런 영양가 없는 추억의 텃밭이나 뒤지고 있는 것도 '마감'이란 소우주에서 발생한 행성 간 충돌일 뿐.
그래도, 아름답잖아요. 2분 36초가 처음부터 끝까지. 도파민이 솟구치며 새벽일 마치고 여태 곤히 자는
아내를 흔들어 깨우고 싶을 만큼. 아니 그전에 내 눈앞의 마감부터. 허리를 곧게 펴고 의자를 당기고
빈 문서창에서 카운트다운처럼 깜빡이는 커서를 노려보며. 아 잠깐 스톱! 한 번만 더 듣고 일하죠 우리
잘 보고 듣고 갑니다!
어바웃타임, 러브액츄얼리, 노팅힐, 윔블던 등 영국 배경의 영화들 너무나 좋아합니다. 영화 로케이션들 여러번 찾아가보기도 했었는데, 그립네요.
푼짱님의 글을 더 많이 보고 싶은데, 마감을 자주 언급하시는 것으로 봐선 어딘가 정기적으로 기고하고 계신 것 같네요. 괜찮으시다면 소개 부탁드릴께요.
원고지 채워 밥벌이하는 건 맞지만 정기적으로 어디 기고하는 건 아니고요. 그냥 영화와 음악 관련해서 자잘한 일 하고 있습니다.
그밖에 누가 마감 전날 잠수 탔거나 시간은 촉박한데 손은 모자랄 때(당장 똥 치울 사람 찾을 때!) 종종 호출받고 해결사 노릇하는 정도죠 뭐 ^^:;
저도 어젯밤 한참 뒤늦게 지난달 수업일지를 작성하다가 핵폭탄 터지는 드라마 폴아웃을 옆 창에 틀어놓고요.
그러다 왜인지 새벽까지 마지막 하루치 수업일지를 굳이 4페이지나 써버리는 행성간 대충돌을 겪었습니다.
보통은 오히려 드라마를 정주행 해버리고 시간을 되돌리는 꿈을 꾸는데 말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갑자기 결혼식이 떠오릅니다...ㅎㅎㅎ
하지만 푼짱님은 마감 1분전에 발송 버튼 누르고 계시겠죠~
처마 밑 빗방울처럼 뚝뚝 떨어지더군요. 모리꼬네 역시 토르나토레가 아니면 그 어떤 다큐멘터리 촬영에도 임하지 않겠다고 했다니
두 사람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생활밀착형 영혼의 콤비였나 봅니다. 제 영혼의 콤비는 카드빚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