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즐거울 순 없고 뜻대로 풀리지 않는 날은 더 많고. 마치 인생처럼
어제는 모처럼 약속이 있었습니다. 볕 좋은 곳에서 '봄술' 한잔하자는 친구의 부름. 오후 1시부터 시작한 술자리가
밤 9시까지 이어질 줄은 미처 몰랐지만, 광화문과 서촌 일대를 빙글빙글 돌며 즐겁게 웃고 떠들었습니다.
그리곤 숙취와 배앓이로 저녁 무렵까지 혼수상태 ㅠㅠ겨우 정신 차리고 오늘의 레이스를 준비하기 시작합니다.
오늘은 일단 두 가지가 문제였는데요. 배앓이 때문에 서큘레이터를 세게 틀 수가 없어서 비지땀을 흘려야 했고요.
입맛까지 깔깔해서 종일 굶다시피 하다가 간신히 냉동 파스타 하나 돌려먹었지만 그걸론 에너지 비축에 별 도움이
되질 않았습니다. 순위권은커녕 완주조차 걱정스러운 상태로 입장했으니 성적은 뭐 안 봐도 블루레이 ㅠㅠ
4랩까진 용케 버텨냈지만 깔딱구간마다 사채이자처럼 불어나는 데미지
그나마 화요일 경기와 달리 오늘은 툭하면 어택으로 불 싸지르는 연쇄방화범이 없어서 4랩까진 그룹 속에서 겨우겨우
한숨 돌릴 기회가 있었는데요. 아우 무쟈게 힘들었습니다 ㅠㅠ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는 것도 결국은 실력. 유구무언;;
5랩에서 끝나는 경기면 마지막 안간힘이라도 써봤을 텐데 겨우 3km 늘어나는 거지만, 6랩이 진을 다 빼놓습니다.
오늘의 교훈. 아끼면 똥 된다. 제발 쪼옴! 응?
그리고 뭔 생각으로 남들 아이템 쓰고 올라갈 때 혼자만 손에 꼭 쥔 채 버티고 자빠졌을까요? 두 번째 깔딱에서
쓰겠단 나름의 계산이었겠지만, 스태미나만 깎아먹는 미련 곰탱이 같은 짓이었습니다 ㅠㅠ 가벼운 몸무게로
1.5km마다 등장하는 고비를 모두 커버하기엔 오늘 컨디션이 너무 엉망이었단 걸 고새 잊어먹었나 봅니다.
그리고 예정된 수순처럼 5랩에서 멀어져가는 선두를 바라만 보는 신세로 전락
5랩 시작할 때만 해도 어떻게든 마지막 두 바퀴만 버텨보자고 이를 악물었는데요. 안 되는 건 안 되더라고요 ㅠㅠ
다운힐 시작되기 전에 붙었으면 모를까, 내리막에 접어들면서 희망도, 투지도, 집중력도 모두 하얀 재가 됐습니다.
이제 남은 건 낙오자들끼리의 치열한 하위권 다툼뿐.
그래도 20위권 안에는 들어가자고 마지막 성냥을 불태운 6랩
400미터, 300미터. 점점 줄어드는 거리와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도망자의 꼬리
피니시 200미터를 남기고 간신히 순위를 한 계단 더 끌어올리는 걸로 마무리
바닥난 체력으로 불꽃같은 스프린트는 언감생심. 18위로 경기를 마쳤습니다. 볼품없는 성적이지만 낙오되고도
화요일보다 7초 늦은 26분대로 들어왔으니 그거나 위안 삼아야죠. 끝까지 선두권에 붙어갔다면, 26분 극초반을
노려볼 수도 있었을 텐데. '만약'이란 가정은 늘 달콤 씁쓸한 여운을 남깁니다.
다음 주 Stage 3의 무대는 와토피아의 Seaside Sprint 코스입니다. 6.3km를 3바퀴 도는 21.8km(Lead-In 포함).
제일 싫어하는 Esses 낙타등 구간을 3번이나 넘어야 해서 혀가 배꼽까지 떨어지는 힘든 레이스가 될 것 같네요.
미들급 참치엉아들의 인정사정없는 인터벌을 얼마나 버텨내느냐가 승부를 결정지을 듯.
3월 이후로 장거리를 통 못 타고 있습니다. 내일은 서울 400K가 있는 날이지만 올해는 300K가 넘는 정규 브레베는
참가하지 않을 계획이라서요. 일종의 '안식년' 같은 거랄까, 뚜렷한 목표나 큰 욕심 없이 편하게 보내려고 합니다.
400K 참가하는 분들의 무사 완주 기원드리고요. 이번 주 (월간)레이스는 여기서 끄읏~! 😁
Ride On~!
고생많으셨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비번은 꼭 잠금 모드 있는 메모에 따로 적어두고 깜빡할 때마다 꺼내봅니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