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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서를 번역해봤는데 자연스러운지 능력자 분께서 검사 좀 해주세요.

Frye makes a sharp distinction between, on the one hand, both "literary theory" and "genuine criticism," which progresses toward making the whole of literature intelligible, and, on the other hand, a kind of criticism which belongs only to the history of taste.

한편 프라이는 문학 전체를 명료하게 만드는 쪽으로 나아가도록, 문학이론과 진정한 비평을 날카롭게 구분하면서 일련의 비평의 경향의 역사에 귀속시킨다.

 

Obviously Frye has little use for the "public critic" -Saint Bueve, Hazlitt, Arold, etc.- who represents the reading public and merely registers its prejudies.

 

확실히 프라이는 단지 생각을 표명할 뿐인 생 뵈브, 해즐릿, 아놀드와 같은 대중 독자를 대표하는 대중비평가를 거의 활용하지 않는다.

 

Frye laughs at "the literary chit-chat which makes the reputations of poets boom and crash in an imaginary stock exchange. That wealthy investor, Mr. Eliot, after dumping Milton on the market, is now buying him again; Donne has probably reached his peak and will begin to taper off; Tennyson may be in for a slight flutter but the Shelly rare still bearish".

프라이는 상상의 증권 거래소에서 이뤄지는 시의 명성을 추락시키는 문학적 잡담을 조롱한다; 부유한 투자가 엘리엇이 시장에 밀턴을 투매한 뒤 그를 다시 구매한다. 돈나/돈느/돈네는 아마 그의 정점을 찍었고 점차 떨어지기 시작할 것이다. 테니슨은 조금씩 갈팡질팡하지만 쉘리의 주식은 여전히 하락세다.

 

Frye is obviously right in ridiculing the "whirligig of taste"; but he must be wrong in drawing the conclusion that "as the history of taste has no organic connection with criticism, it can be easily separated."

(경향/취향/감각)의 변천에 대한 프라이의 조롱은 분명히 옳다. 하지만 그의 맛 경향의 역사는 비평과 유기적인 연관성이 없고 쉽게 분리된다는 결론은 명백히 틀렸다.

 

In my own History of Modern Criticism I have discovered that it cannot be done. 현대비평사에서 나는 그것을 끝낼 수 없음을 발견했다.

 

Frye's view that "the study of literature can never be founded on value judgements," that the theory of literature is not directly concerned with value judgements, seems to me quite mistaken.

문학연구는 가치평가를 내릴 수 없으며 문학이론은 가치평가와 직접적으로 연관되지 않는다는 프라이의 견해는 내게 잘못된 것처럼 보였다.

 

He himself concedes that the "critic will find soon, and constantly, that Milton is a more rewarding and suggestive poet to work with than Blackmore".

(프라이)비평가는 곧, 밀튼이 블랙모어보다 더 가치 있고 추천할 만한 시를 쓴다는 것을 알아차릴 것이라고 인정했다.

 

Whatever his impatience with arbitrary literary opinion may be or with the game of rankings, I cannot see how such a divorce as he seems to advocate is feasible in practice.

순위게임이나 그의 독단적인 문학적 의견에 대한 조바심이 어떻든 간에 나는 그가 실현 가능하다고 지지하는 것처럼 보이는 분리를 이해할 수 없다.

 

Literary theories, principles, criteria cannot be arrived at in vacuo: every critic in history has developed his theory in contact (as has Frye himself) with concrete works of art which he has had to select, interpret, analyze and, after all, to judge.

문학이론, 원리, 기준은 현실과 유리될 수 없다. 역사의 모든 비평가는 (프라이 또한) 그가 선택하고 해석하고 분석하고 평가한 구체적인 예술작품과 접촉함으로써. 자신의 이론을 개발해왔다.

 

The literary opinions, rankings, and judgements of a critic are buttressed, confirmed, developed, by his theories, and the theories are drawn from, supported, illustrated, made concrete and plausible by works of art.

비평가의 문학적 견해, 순위, 그리고 판단은 그의 이론에 의해 지지되고 확증되고 개발된다. 그리고 이론은 예술 작품으로부터 구체적이고 그럴 듯하게 도출되고 뒷받침되고 설명되고 만들어진다.

 

The relegation, in Frye's Anatomy of Criticism, of concrete criticism, judgments, evaluations to an arbitrary, irrational, and meaningless "history of taste" seems to me as indefensible as the recent attempts to doubt the whole enterprise of literary theory and to absorb all literary study into history.

프라이의 비평의 해부에서의, 독단적이고 비이성적이며 의미 없는 “경향의 역사로서 구체적인 비평, 심사, 평가에 대한 추방은 문학이론 전체를 의심하고 모든 문학연구를 역사 속으로 흡수시키는 최근의 시도들처럼 지키기 어려운 것처럼/비현실적인 것처럼 보인다.

 

In the forties, during the heyday of the New Criticism, historical scholarship was on the defensive.

신비평이 전성기를 누린 1940년대에, 역사학은 방어적이었다.

 

Much was done to reassert the rights of criticism and literary theory and to minimize the former overwhelming emphasis on biography and historical background.

비평과 문학이론의 권위를 되살리고 과거 지나치게 강조되던 전기와 역사적 배경을 최소화하는 일이 대부분 이루어졌다.

 

In the colleges a textbook, Brooks and Warren's Understanding Poetry, was the signal for the change.

여러 대학교에서 교재로 쓰인 브룩스와 워렌의 시의 이해는 변화의 신호였다.

 

I believe my own Theory of literature was widely understood as an attack on "extrinsic" methods, as a repudiation of “literary history," though the book actually contains a final chapter on "Literary History" which emphatically argues against the neglect of this discipline and provides a theory of a new, less external literary history.

나는 나의 문학의 이론이 문학사에 대한 거부나 외부적 방법에 대한 공격으로서 널리 이해될 것이라고 믿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사실 마지막 장에서, 이 학문의 방치에 대해 반할 것을 논하면서 새롭고 덜 외부적인 문학사를 새로운 이론으로서 제시하는 문학사를 포함하고 있다.

 

But in recent years the situation has become reversed, and criticism, literary theory, the whole task of interpreting and evaluating literature as a simultaneous order has been doubted and rejected.

하지만 최근 몇 년간 상황은 전복되었다. 비평과 문학이론, 문학을 동시적인 작업으로서 해석하고 분석하는 모든 업무는 의심받고 거부되었다.

 

The New Criticism, and actually any criticism is today on the defensive.

신비평은, 그리고 사실 어느 비평이든, 오늘날 수세에 몰려있다.

 

One type of discussion moves on an empirical level as a wrangle about the interpretation of specific passages or poems.

구체적인 악절이나 시의 해석에 대한 논쟁으로서 논의의 일종은 경험적 차원으로 움직인다.

 

The theoretical issue is there put often in very sweeping and vague terms.

이론적인 문제는 종종 아주 포괄적이고 막연한 용어로 쓰인다.

 

A straw man is set up: the New Critic, who supposedly denies that a work of art can be illuminated by historical knowledge at all.

허수아비가 설치된다: 신비평가는 아마 예술작품이 역사적 지식에 의해 조명될 수 있다는 것을 거부할 것이다.

 

It is then easy to show that poems have been misunderstood because the meaning of an obsolete word was missed or a historical or biographical allusion ignored or misread.

오래된 단어의 의미 상실이나 역사적, 전기적 인유의 무시 혹은 오독으로 인해 시가 잘못 이해되는 경우는 쉽게 볼 수 있다.

 

But I do not believe that there ever was a single reputable "New" critic who has taken the position imputed to him.

하지만 나는 그에게 전가된 자리를 차지한, 훌륭하고 새로운비평가가 한 명 있다고 믿지 않는다.

 

The New Critics, it seems to me rightly, have argued that a literary work of art is a verbal structure of a certain coherence and wholeness, and that literary study had often become completely irrelevant to this total meaning, that it had moved all too often into external information about biography, social conditions, historical backgrounds, etc.

신비평가들은, 내게는 정확하게 보이는, 예술의 문학작품이 확실한 일관성과 전체성을 지닌 언어적 구조물이고 문학연구가 전기, 사회 상황, 역사적 배경 등의 외부 정보로 너무 자주 변화하는 전체적인 의미와는 관계없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But this argument of the New Critics did not mean and could not be conceived to mean a denial of the relevance of historical information for the business of poetic interpretation.

하지만 신비평가의 이러한 주장은 시 해석 작업에 있어서 역사 정보와의 연관성을 부정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으며, 부정하는 의미로 이해돼서도 안 된다.

 

Words have their history; genres and devices descend from a tradition; poems oftens refer to contemporary realities.

언어는 역사성을 지닌다; 장르와 장치는 전통으로부터 전해졌으며 시는 종종 현대의 사실을 가리킨다.

 

Cleanth Brookssurely a New Critic who has focused on the close reading of poetryhas, in a whole series of essays (mainly on seventeenth century poems), shown very precisely some of the ways in which historical information may be necessary for the understanding of specific poems.

-확실히 시의 꼼꼼히 읽기에 주력한 신비평가인- 클린트 브룩스는 에세이의 전체 흐름에서 (주로 17세기 시) 구체적인 시를 이해하기 위해 역사적인 정보가 필요할 수 있는 몇 가지 방법을 아주 정밀하게 보여 왔다.

 

In a discussion of Marvell's "Horatian ode," Brooks constantly appeals to the historical situation for his interpretation, though he is rightly very careful to distinguish between the exact meaning of the poem and the presumed attitude of Marvell toward Cromwell and Charles .

마벨의 호라티우스 풍 오드의 논의에서, 브룩스는 그의 해석의 역사적인 상황을 거듭 마음에 들어 함에도 불구하고 그는 시의 정확한 의미와 바벨의 크롬웰과 찰스 1세에 대해 추정되는 태도를 아주 정확하게 신중한 구분을 한다.

 

He argues "that the critic needs the help of the historianall the help he can get," but insists that "the poem has to be read as a poemthat what it 'says' is a question for the critic to answer, and that no amount of historical evidence as such can finally determine what the poem says".

그는 비평가는 역사가로부터 받을 수 있는 모든 도움을 필요로 한다고 주장하지만 시는 시로서 읽혀야만 한다고 요구한다. 시가 무엇을 말하는가는 비평가가 대답해야할 질문이다. 그리고 마침내 시가 무엇을 말하는 지를 결정내릴 수 있는 것은 역사적 사료의 양이 아니다.

 

This seems a conciliatory, sensible attitude which holds firmly to the critical point of view and still admit the auxiliary value of historical information, and does not of course deny the separate enterprise of literary history.

이것은 비판적인 관점을 단호히 유지하면서 여전히 역사적 정보의 보조적 가치를 인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회유적이고 현명한 태도로 보인다. 그리고 이것은 당연히 문학사의 분리된 사업-기획을 부정하지 않는다.

  • 교강용님
  • (2017-03-21 08:57)
1. 프라이는 문학 전체를 이해하기 쉽게 만들어가는 문학이론 및 진정한 비평과,  취향의 역사(의역)에 국한된 형태의 비평을 뚜렷하게 구별한다.

2. ~~ 편견을 심어줄 뿐인 대중 비평가를 거의 다루지 않는다.

3. ~~ 상상속의 주식거래마냥 시에 대한 평판의 흥망을 결정하는 문학적 잡담.

.. 아 너무 길어서 한번에 못하겠네요 아무튼 제가 보기에 좀 다른 이해가 나온 것이니 참고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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